임진왜란 때 관음포(觀音浦)에서 순국한 이순신(李舜臣)의 영(靈)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사적 제233호 사당입니다.
당시 노량은 전라남도 여수를 떠나 충무로 가려면 거쳐야 하는 연안수로(沿岸水路)의 요충지였습다. 이순신이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하자
이 곳에 처음 유구(遺軀)를 안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 34년째 되던 1632년(인조 10)에 이 곳 선비들이 유지(遺址)에 작은 초사(草舍)를 지어 치제추모(致祭追慕)하였습니다.
1658년(효종 9)에 초사를 헐고 비로소 사당을 건립하여 봄ㆍ가을로 제향하게 하였으며 비도 다시 세웠습니다.
1663년(현종 4)에 충무 충렬사와 함께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을 받았습니다.
이곳에 있는 4기의 비 가운데에는 이러한 중건사유를 자세히 기록한 비석이 있는데,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썼습니다.
이순신의 유구는 이 곳에 가장(假葬)되었다가 이듬해인 기해년 2월 11일 충청남도 아산으로 이장되어 지금은 가분묘(假墳墓)만 후원에 남아 있습니다.
이 사당이 세워진 그 당시에는 사당 옆에 호충암(護忠菴)이라는 암자가 있어 화방사(花芳寺) 승려 10여 명과 승장(僧將) 1명이 교대로 수직(守直)하였다 합니다.
현재 경내에는 사당을 비롯하여 비각ㆍ내삼문(內三門)ㆍ외삼문ㆍ재실ㆍ강당 그리고 일각문(一閣門)ㆍ부속건물ㆍ가묘소 등이 있으며, 면적은 1,045평.
1965년 당시 대통령 박정희(朴正熙)가 ‘충렬사’와 ‘보천욕일(補天浴日)’ 현판을 다시 썼고, 1973년 6월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보수, 정화되었습니다.
(펌)
충렬사 앞 노량 앞 바다에 거북선이 한척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입장료 어른 1000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거북선 선수부위에 노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포 2문이 앞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고정 닻도 배 중앙에 있네요..
좌우로 당시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하였고, 또한 포가 진열하고 있습니다.
완전 포장?된 상태가 아니고 아마 지붕을 떠 받치고 있어서 햇빛 광은 들어온 구조였나 봅니다.
여긴 장군의 부관이 머무는 곳 같아 보입니다.
배 선미 부위에 방향키인가 봅니다.
그래도 화장실은 있어야 되겠죠?ㅎ 옛날 뒷간^^
좁지만 배 하단 부위에 조그만 하지만 병사들이 쉴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사병들의 휴식공간 2
노량 앞 바다를 남해대교가 가로 지르고 있네요...
장군의 지휘소 공간입니다.
왠지 모를 가슴속에 비장함 마저 서려 마음이 무겁네요!!!!!
가분묘 ㅠㅠㅠ
이순신 장군의 얼이 서려 있는 이곳의 영양수를 한모금 합니다.
이렇게 간단한 남해 충렬사 간단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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